침묵이라는 이름의 방관 (에스겔 33:1-9)
위험을 눈앞에 두고도 입을 다무는 순간이 있습니다. 갈등을 피하고 싶어서, 괜한 오해를 사고 싶지 않아서, 혹은 내 일이 아니라는 생각에 가만히 침묵을 선택하곤 합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으니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았다고 스스로를 위로하면서 말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그 침묵 자체가 중대한 책임을 지는 일일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에스겔을 이스라엘 족속의 파수꾼으로 세우셨습니다. 파수꾼의 직무는 명확합니다. 적의 침략이나 위험이 다가오는 것을 발견했을 때 나팔을 불어 성 안의 사람들에게 경고의 신호를 보내는 것입니다. 파수꾼이 나팔을 불었음에도 그 소리를 무시하고 대비하지 않은 사람은 자신의 죄로 죽게 되지만, 그 피에 대한 책임은 파수꾼에게 없습니다. 하지만 만약 파수꾼이 위험을 보고도 나팔을 불지 아니하여 한 사람이라도 생명을 잃는다면, 하나님은 그 피값을 파수꾼의 손에서 찾겠다고 선언하십니다.
"인자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족속의 파수꾼으로 삼음이 이와 같으니라 그런즉 너는 내 입의 말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들에게 경고할지어다" (에스겔 33:7)
이 엄중한 말씀은 고대 이스라엘의 선지자에게만 주어지는 메시지가 아닙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역시 진리의 소식을 위탁받은 파수꾼으로 이 세상 가운데 서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종종 진리를 불편해하고, 진실한 경고의 소리에 귀를 막으려 합니다. 그래서 세상을 향해, 혹은 주변의 사랑하는 사람들을 향해 진실을 말하기보다 침묵을 택하곤 합니다. 침묵은 마찰을 줄여주는 안전한 지대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위험을 똑똑히 보면서도 잠잠히 있는 것은 중립이 아니라, 타인의 위험을 외면하는 또 다른 방식의 책임 회피입니다.
경고는 비난이나 정죄가 아닙니다. 진정한 경고는 상대를 살리고자 하는 가장 간절한 사랑의 표현입니다. 의사가 환자에게 질병의 위험성을 솔직히 알리고 치료를 권하듯, 참된 사랑은 다가오는 위험 앞에 눈감지 않습니다.
오늘 우리의 입술에는 진리와 사랑의 나팔이 들려 있습니다. 누군가 그릇된 길에서 방황하고 있을 때, 혹은 세상이 영적인 어둠 속에서 길을 잃어가고 있을 때, 우리가 나누어야 할 진실한 한마디와 따뜻한 경고를 미루지 말아야 합니다. 위험을 알고도 입을 다문 침묵은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세우신 그 자리에서 용기 있게 진실과 사랑의 나팔을 부는 하루가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내가 마주하는 삶의 자리에서, 불필요한 마찰이 두려워 마땅히 나누어야 할 사랑과 진실의 말을 머뭇거리고 있는 대상은 누구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