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주일 설교] 바다 한가운데 펼쳐진 그물
WHY (신념 및 가치관) - 무너지지 않는 요새는 없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속삭입니다. 더 높은 성벽을 쌓으라고 말합니다. 아무도 무너뜨릴 수 없는 견고한 배경을 만들고, 더 많은 물질을 채워 너의 안전을 보장하라고 재촉하지요. 인생을 살아가면서 우리도 모르게 그런 세속의 음성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습니까? 돈이 있으면 안전할 것 같고, 내 삶의 성벽이 높으면 결코 무너지지 않을 것처럼 안심하곤 합니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미래의 불안을 지우기 위해 밤낮으로 땀을 흘립니다. 마침내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자리에 올라서거나, 어느 정도 물질의 여유를 갖추게 되면 비로소 숨을 내쉬며 안도합니다. “이제는 안전하다. 이 정도 벽을 쌓아 올렸으니 당분간은 끄떡없을 것이다.”
과연 그럴까요? 인간이 세운 요새가 정말 우리의 영혼과 미래를 끝까지 책임져 줄 수 있을까요? 오늘 성경은 우리에게 아주 서늘하고 엄중한 경고를 던집니다. 인간이 세운 가장 완벽한 요새도, 하나님의 말씀 한마디에 단숨에 흔적도 없이 사라질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주 안에 사랑하는 성도님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해상 도시 ‘두로’가 바로 그런 곳이었습니다. 바바람이 몰아치는 지중해 바다 한가운데 우뚝 솟아 있는, 난공불락의 섬 요새였습니다. 온 세상의 부가 흘러들어오던 화려한 무역 중심지였기에, 그들은 자신들이 쌓은 물질과 지리적 이점이 결코 무너지지 않을 영원한 요새라고 확신했습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은 그 견고함이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허망한 모래성에 불과한지, 역사의 엄중한 현장을 통해 우리에게 똑똑히 가르쳐 줍니다. 내가 의지하고 있는 세상의 요새를 겸손히 내려놓고, 영원한 반석이신 하나님만을 다시 붙드는 은혜의 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HOW (어떻게 그 신념을 반영할 것인가?) - 말씀으로 허물어지는 세상의 자랑
1. 이웃의 아픔을 나의 기회로 삼는 탐욕의 눈을 거두십시오 (1-2절)
오늘 본문 1절과 2절을 함께 봅니다. “인자야 두로가 예루살렘에 관하여 이르기를 아하 뭇 백성의 문이 깨져서 내게로 돌아왔도다 그가 황폐하였으니 내가 충만함을 얻으리라 하였도다”
지금 시점은 남유다 예루살렘이 바벨론의 공격 앞에 멸망당하고,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 피눈물을 흘리며 포로로 끌려가던 참혹한 비극의 때입니다. 그런데 이웃 나라인 두로가 보인 첫 반응이 무엇이었습니까? “아하! 내게 기회가 왔다! 예루살렘이 무너졌으니 이제 그 무역 통로가 다 내게로 돌아와 내가 가득 차게 되리로다!”
성도님들, 이것은 단순한 이기심이 아닙니다. 과거 솔로몬 왕 시절, 이스라엘과 두로는 하나님을 증인으로 삼아 거룩한 '형제의 계약'을 맺었던 동맹이었습니다. 그러나 두로는 돈 앞에서는 그 거룩한 언약도 미련 없이 버렸습니다. 이웃의 고통을 오직 내 지갑을 채울 계산적인 비즈니스 기회로만 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 냉혹한 영적 기회주의를 향해 공의의 칼을 빼 드셨습니다. 그들의 고백 속에 담긴 교만의 본질, 즉 “내가 충만함을 얻으리라”며 하나님 임재가 떠난 자리에 자신의 물질을 채워 스스로 내 인생의 주인이 되겠다는 자아 신격화를 보셨기 때문입니다.
의로우신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치실 때는 바르게 세우기 위한 ‘징계하시는 공의’로 다스리셨으나, 그 아픔을 틈타 스스로를 신의 자리에 올려놓은 두로를 향해서는 우주적 재판관으로서 철저한 ‘보응하시는 공의’를 선포하십니다. 우리의 삶은 어떻습니까? 치열한 세상 속에서 누군가의 실패나 공동체의 아픔을 목격할 때, 내 마음속에 은근한 안도감이나 기회의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지는 않습니까? 타인의 고통을 나를 채울 도구로 삼는 차가운 냉소를 멈추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우는 그리스도의 긍휼을 회복하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 역사를 움직이시는 하나님의 세밀하고 주권적인 손길을 경외하십시오 (3-14절)
스스로를 바다의 신처럼 여기며 교만해진 두로를 향해, 하나님께서 “내가 너를 대적하겠다” 선포하십니다. 그런데 오늘 이 예언 속에는 소름 돋는 하나님의 주권이 숨어 있습니다. 7절부터 11절까지는 주어가 철저히 단수, 즉 '그가(느부갓네살 왕)'로 진행됩니다. 예언 그대로 그는 육지 성읍을 처참히 짓밟았습니다. 그러나 12절에 이르면 갑자기 주어가 복수, 즉 '그들이(수많은 연합군)'로 바뀝니다.
성도님들, 역사는 이 문법의 변화를 소름 돋게 성취했습니다. 느부갓네살은 섬 요새까지는 무너뜨리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약 250년 뒤, 알렉산더 대왕과 그의 대군(그들)이 밀려와, 무너진 옛 도성의 돌과 흙을 모조리 긁어모아 바다에 던져 섬까지 닿는 방죽길을 만들었습니다. 오늘 12절 말씀, “네 돌들과 네 재목과 네 흙을 다 물 가운데에 던질 것이라”는 예언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의 작정은 결코 취소되지 않으며,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가장 완전한 때를 향해 점진적이고도 두렵게 흘러갑니다. 이것이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세상의 힘을 두려워하지 말고, 역사를 움직이시는 하나님의 세밀하고 주권적인 손길을 겸손히 경외하십시오.
3. 존재의 해체 앞에서 진짜 영원한 나라를 소유하십시오 (15-21절)
두로의 히브리어 뜻은 ‘바위 요새’였습니다. 그들은 스스로가 영원할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셀라’, 즉 흙 한 줌 없는 ‘민둥 반석’으로 만드시겠다고 하십니다. 존재 자체를 해체하시는 것입니다. 스스로를 신격화한 문명이 하나님 없는 혼돈과 무의 상태, 즉 창조 이전의 어둠인 ‘깊음’으로 가라앉는 ‘창조 역행적 심판’입니다.
하나님께서 이토록 세속 문명을 철저히 해체하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 자리에 하나님이 친히 다스리시는 새 성전과 생명수 강이 흐르는 ‘새 창조’의 역사를 세우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붙들어야 할 진짜 안전지대는 낡아지고 흔들릴 이 세상이 아닙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시작되었고 마침내 완성될 영원한 나라입니다. 이 영원한 소망을 마음에 품고 흔들리는 세상을 이겨내시기를 소망합니다.
WHAT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 영원한 반석에 인생을 짓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인생의 거친 바다 한가운데서 자신만의 안전한 섬을 만들려고 밤낮으로 애쓰던 두로는, 결국 그들이 신뢰하던 바다 밑바닥 속으로 깊이 가라앉고 말았습니다. 우리가 지금 인생의 현장에서 쌓고 있는 성벽은 무엇입니까? 그것이 혹시 하나님 없는 나만의 안전지대이자, 이웃의 아픔을 기회로 삼는 탐욕은 아닙니까?
우리는 침례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한 자들입니다. 세상 요새를 신뢰하며 교만하게 서 있던 우리의 옛 자아는 이미 두로처럼 물속에 장사 지낸 바 되었습니다. 그리고 물에서 올라올 때, 우리는 영원히 무너지지 않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새롭게 창조되었습니다.
더 이상 수장되어 사라질 세상의 흙먼지 위에 인생을 짓지 마십시오. 오늘, 하나님 대신 의지했던 마음의 교만을 철저히 회개합시다. 내 삶의 진정한 주인이자 구원자는 오직 여호와 하나님뿐이심을 겸손히 고백하며 주님 앞에 엎드립시다. 세상의 요새는 무너질지라도, 주님 안에 있는 자들은 영원히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 십자가의 든든한 반석 위에 우리의 인생과 가정을 세워 가시기를, 그리하여 주님이 주시는 참된 평안을 누리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기도]
공의롭고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 에스겔 선지자를 통해 선포된 두로의 엄중한 심판의 말씀을 마음에 받습니다. 내 힘으로 안전을 확보하려 하고, 하나님 없이도 평안할 수 있다고 착각했던 우리의 교만과 자아 숭배를 이 시간 주님의 십자가 앞에 내려놓고 회개하오니 용서하여 주옵소서. 타인의 고통을 보며 내 유익을 계산하던 비겁한 마음을 씻어 주시고, 우리의 참된 피난처이신 예수 그리스도만을 온전히 신뢰하게 하옵소서. 오늘 하루도 영원한 말씀의 반석 위에 굳건히 서서 주님과 동행하는 삶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축도]
이제는 우리 인생의 가짜 안전지대를 허무시고 참된 구원의 반석이 되어주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타인의 아픔을 기회로 삼는 교만을 심판하시며 온 우주를 공의로 통치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과, 세상의 요새 속에서도 우리의 마음을 흔들리지 않는 천국 소망으로 인도하시는 성령 하나님의 교통하심이, 오직 주님만을 유일한 피난처로 삼고 겸손히 순종하기로 결단하는 사랑하는 성도님들의 가정과 일터와 온 교회 위에 이제로부터 영원토록 항상 함께 있을지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