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루터기에서 시작되는 완벽한 평화 (이사야 11:1-16)
살다 보면 모든 가능성이 뿌리째 잘려 나간 듯한 순간을 만납니다. 오랫동안 애써온 노력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리거나, 의지하던 관계가 끊어지고, 미래에 대한 소망마저 바닥을 드러낼 때가 있습니다. 밑동만 남은 그루터기는 더 이상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는 완벽한 절망의 상징처럼 보입니다. 생명의 온기는 사라지고, 오직 지나간 날의 흔적과 차가운 허무만이 남아 있는 자리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바로 그 소망 없어 보이는 그루터기 위에서 하나님의 가장 놀라운 역사가 시작된다고 선언합니다.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그의 위에 여호와의 영 곧 지혜와 총명의 영이요 모략과 재능의 영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강림하시리니" (이사야 11:1-2)
이사야 선지자가 바라본 세상 역시 잘려 나간 나무처럼 비참했습니다. 강대국의 위협과 내부의 부패로 인해 소망이 완전히 그루터기처럼 잘려 나간 시대였습니다. 바로 그 절망의 현장에 하나님은 한 아기, 즉 메시아의 탄생을 약속하십니다. 이 왕은 세상의 군주들처럼 압도적인 힘이나 권력으로 상대를 누르는 분이 아닙니다. 외모나 소문으로 판단하지 않으며, 오직 공의와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가난하고 겸손한 자들을 다스리시는 분입니다.
그분의 통치가 임할 때 펼쳐지는 풍경은 참으로 눈부십니다.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고,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눕습니다.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고, 어린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어도 아무런 해를 입지 않습니다. 강자가 약자를 먹잇감으로 삼는 약육강식의 비정한 질서가 사라지고, 상함도 없고 해됨도 없는 완벽한 평화가 온 땅을 덮습니다.
우리는 흔히 상황을 바꾸거나 세상을 주도할 힘을 가질 때 평화가 찾아올 것이라고 믿습니다. 내 뜻대로 일들이 조절되고, 나를 위협하는 환경이 제거되어야 비로소 안도합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참된 평화는 내가 세상을 통제하는 데서 오지 않습니다. 오히려 내 삶을 거룩한 왕의 통치 아래 가만히 놓아드리는 데서 시작됩니다. 내 힘과 판단, 조급함을 내려놓고, 우리 삶의 기치가 되시는 그분의 신실한 다스림에 나를 맡길 때 비로소 진정한 샬롬이 임합니다.
오늘 당신의 삶에서 잘려 나간 희망과 한계 때문에 마음이 무거우신가요? 다 끝났다고 생각되는 그 그루터기는 사실 하나님의 새로운 생명이 싹트는 은혜의 자리가 될 수 있습니다. 내 조급한 계산을 내려놓고 그분의 다스림을 기대할 때, 생각지 못한 평화와 회복이 우리의 삶을 온전히 감싸 안을 것입니다.
오늘 당신이 통제하려 애쓰던 마음을 내려놓고, 왕 되신 하나님의 다스림에 완전히 맡겨 드려야 할 삶의 그루터기는 어디입니까?